백제의 고분

서울, 공주, 부여, 전라도로 나누어져 특색을 보이고 있다. 서울지방은 간단한 널무덤 외에 고구려식의 돌무지무덤과 돌방무덤이 축조되어 백제의 건국집단이 고구려로부터 유입되었다는 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서울 석촌동(石村洞)의 계단식 피라미드형 돌무지무덤과 만주 환런〔桓仁〕에 있는 돌방돌무지무덤과 비슷한 고분이 있다. 서울 가락동(可樂洞)·방이동(芳荑洞)에는 고구려식의 <ㄱ>자 또는 <모>자형의 널길이 남벽의 동쪽이나 중앙에 딸린 돌방무덤이 있다.

공주지방에서는 고구려식의 돌방무덤은 계속되나 돌무지무덤은 소멸되었고, 독무덤도 있는가 하면 6세기 초에는 중국식 벽돌무덤〔塼築墳;전축분〕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송산리 6호분(宋山里六號墳)은 벽돌무덤이면서 사신도 벽화가 그려져 있고, 무령왕릉은 터널식 널방 앞에 널길(묘에 들어가는 길)이 딸려 있고, 널길 입구에는 돌짐승(鎭墓獸;진묘수)와 지석(買地券;매지권)을 두는 등 중국 6조(六朝)의 묘제를 따르고 있다.

공주지방 고분의 특색은 백제의 독자적 형식을 갖고 발전하고 있으며, 돌방무덤도 처음의 사각형 합장묘에서 직사각형 홑무덤으로 바뀌어 간다. 부여와 전라도지방은 공주에서 개발된 직사각형 돌방무덤의 발달된 형태의 고분이 확산되었고, 특히 전라도지방에서는 돌무덤의 전통과 가야식의 구덩식 돌덧널무덤도 있다. 영산강 하류의 영암 내동리, 나주 반남면 일대에는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독무덤이 성행하고 있다.

신촌리 9호분의 제2호 독무덤은 한 봉토 안에 큰 항아리를 여러 개 묻은 가족묘로서 금동판을 쓰고 칼을 찬 지방호족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한편 6세기 후반부터는 불교의 성행으로 백제 각지에서도 화장(火葬)을 했었던 것 같으나, 부여읍 중정리·염창리 등에서만 뼈단지가 발견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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