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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 불꽃축제-카펠교

담배꽁초가 부른 재난 딛고 새 단장한 카펠교 취리히 공항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스위스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첫 관문이 되곤 하는 곳이 루체른이다. 붉은빛 스위스 꽃들과 아우러진 카펠교를 중심으로 잔잔한 로이스 강이 흐르고 강 주변에는 리기산과 필라투스산이 멀리 올려다보이는 조용한 중세 분위기의 마을이다. 루체른 시내를 걷다 보면 모두 4개의 다리가 있어 구시가와 신시가를 연결해주고 있다. 이 중 지붕이 있는 다리는 카펠교와 Mill다리 두 개뿐이며 카펠교는 지붕이 있는 다리로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루체른의 상징이 되어왔다. 1333년 세워진 이 다리는 중세 예술과 건축양식을 잘 표현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다리였지만 1993년 8월18일 다리주변 보트에서 기름이 유출되었는데 그만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에 인해 화재가 발생, 다리의 3분의2가 소실되어 루체른을 사랑한 전 세계인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 후 1994년 4월14일 재건축되어 일반인들에게 다시 공개되고 있는데 아직까지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가 되고 있다. 다리안쪽 천장의 삼각형 용마루에는 17,8세기의 항인리히 베그만에 의해 그려진 그림이 111개나 붙어 있으며 그림들은 스위스의 크고 작은 역사 및 에피소드, 성인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그림 역사책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금 카펠교에서 볼 수 있는 그림 대부분도 화재로 소실되었고 화재 이후 다시 복원한 것이다. 화재 당시 111개의 글림중 30개의 그림만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다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리의 한쪽 벽이 다른 한쪽보다 높게 만들어졌는데 이는 침략자를 대비해 화살을 피하며 잘 공격 할 수 있도록 요새의 역할을 한 것이다. 다리 옆 한쪽에는 물 탑이 로켓 모양으로 서 있다. 이 물 탑은 원래 파수대로 사용되었고 내부는 감옥과 고문실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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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하나비축제-유래

1613년 영국왕 제임스 1세의 사신인 존 셀리스가 도쿠카와 이에야스 앞에서 펼쳐 보인 것이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도쿠가와 가문은 물론 전국의 제후들이 전문 장인인 하나비시'(花火師) 장인들은 매년 스미다가와에 모여 후원자의 명예를 걸고 솜씨를 겨루었다. 이는 곧 서민들 사이에서도 유행했고 전국 주요 도시에서 전문적으로 놀이용 '꽃불'을 만드는 민간업자들이 잇따랐다. 이렇게 시작된 하나비는 곧 서민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게 되었으나 그 후유증으로 화재가 잇따랐다. 그 후 막부는 화재를 이유로 6차례의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하였으나 1733년 8대 쇼군이었던 요시무네(吉宗)가 전년의 흉년과 전염병으로 숨진 사람들을 위한 위령제에서 불꽃놀이를 다시 시작하게 된 후 금지령은 완전히 해제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화약은 전국(戰國)시대에 무기로 사용되었으나 에도시대에 들어오면서 오락으로서의 하나비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되었던 화약이 오락으로서 그 용도를 바꿀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오늘날과 같은 기술을 갖게 되기까지는 19세기 말 각종의 화학약품을 곁들여 다양한 빛깔을 내는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대를 이어 장인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매년 대회를 통해 기량을 겨룬 결과 세계 정상의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매년 새로운 하나비가 개발되고 있으니 올해도 변함없이 새롭게 태어난 하나비가 쏘아 올려져 사람들의 탄성과 로맨틱한 분위기를 창출해낼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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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불꽃축제

단일 불꽃행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부산불꽃축제가 18일 밤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광안리 해수욕장 일대의 하늘과 바다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희망'을 주제로 올해 4회째를 맞은 이번 불꽃축제에서는 50여분 동안 웅장하고 화려한 불꽃 8만5000발이 발사돼 광안리를 가득메운 120만명에 이르는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지난 해보다 중대형 폭죽이 늘어 불꽃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화려해진 불꽃축제는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5막으로 이뤄진 '이야기가 있는 부산 멀티미디어 불꽃쇼'를 펼쳤다. 직경 400m가 넘는 초대형 불꽃을 만들어 내는 일명 '대통령 불꽃'이 광안리 하늘을 가득히 수놓았으며, 광안대교의 현수교 구간 상판에서 마치 폭포가 쏟아지듯 불꽃이 바다로 흘러내리는 '나이아가라'도 한층 아름다운 모습을 선보였다. 관람객들의 머리 위로 등장해 인기를 모았던 '불새'도 올해는 5마리로 늘어 더욱 멋진 모습을 연출했고, 하늘로 치솟은 불꽃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아래위로 움직이는 '고스트 불꽃'을 비롯해 '캐릭터 불꽃' 등 새로 개발된 불꽃들이 첫 선을 보여 운집한 관람객들을 즐겁게 했다. 주말 가을밤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한 불꽃축제의 다양한 불꽃 모습들을 모아 화보로 꾸몄다. 단일 불꽃행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부산불꽃축제가 올해 4회째를 맞아 `희망'을 주제로 한층 웅장하고 화려하게 펼쳐져 120만명에 이르는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축제는 오후 8시 카운트다운과 함께 첨단 레이저 및 음향을 배경으로 45분 동안 무려 8만5천여발에 이르는 폭죽들이 하늘로 솟구쳐 오른 뒤 터지면서 다양한 불꽃들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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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초여름에 접어들어 한낮의 더위도 제법 심해지며 향기 높은 신록이 물들기 시작하는 5월이면 어린이들이 고대하는 하루가 있다. ‘어린이 날’, 어른들도 그들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되고, 어른들을 중심으로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눈을 들어 어린이들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날이다. 어린이날의 기원을 세계적으로 고찰하면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856년 미국의 레오날드 목사가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는 6월의 둘째 주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어린이들의 신앙심을 높이기 위한 의식을 매년 거행하였다. 그 후 미국의 각지에 퍼져 1863년 미국의 감리교회에서 6월 둘째 주일을 그 기념일로 제정하자 1883년부터 전 국민적으로 시행하였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그 기원이 성질상 미국과 다르다.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인 소파 방정환 선생의 제창으로 1923년 1월 1일에 첫 어린이 날 행사를 갖고 그 뒤 해마다 5월 1일(후에는 5월의 첫 일요일)을 기하여 다채로운 행사를 거듭하면서 3.1운동 후 각처에서 조직된 소년 단체를 규합하여 어린이날의 민족 정신을 함양함에 노력하였던 것이다. 이런 어린이날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결국 일제의 탄압으로 1937년 제 16회를 끝으로 1938년부터는 행사를 갖지 못하였고, 8․15해방 후 1946년 5월 5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여 행사를 소생시켰으며 1956년에 이르러 국가의 정식 법령으로 확정을 보았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를 올바르게 기르는 길이 바로 잃은 나라를 되찾는 길이라고 믿고 어린이 운동을 시작한 그 때와는 달리, 우리 나라는 어엿한 주권 국가로서 경제적인 발전과 더불어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황금만능 사상과 인명 경시 사상이 만연하여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마저 일어나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구조되어야 하는 어린이가 범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어린이들을 어른의 축소판이라 생각하기보다는 그들만의 독특한 정신적 구조를 인식하여 그들의 인격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겠으며, 그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자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지켜보면서 지도해 줄 수 있는 민주적인 교육 환경이 만들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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