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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놀이

민속놀이는 원래 민간의 신앙행사에 부수되었던 예능이다. 즉 그것은 집단신에게 무사태평과 오곡풍량을 기원하면서 그 신을 즐겁게 하고 동시에 신의를 탐지하기 위하여 발생 전개되었던 신사행위의 일종이었다. 신전에서의 농악, 탈춤, 굿 등이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오신(娛神) 행위였다면, 신전에서의 씨름, 줄다리기, 편싸움 등은 신의를 탐지하기 위한 경기였다. 이러한 신전의 여러 행사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민간에 유포되어 보편화됨으로써, 그 원래의 신성성은 약화되고 오히려 오락성이 강화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신사와는 관계없니 일반민중들의 놀이가 되어 민중의 유희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오락이 되었다. 민속놀이는 그 목적이나 내용에 따라 놀이 자체가 목적인 놀이, 풍농을 기원하는 놀이, 겨루기 놀이, 내기놀이, 풍어를 기원하는 놀이, 개인의 복락이나 마을의 태평을 기원하는 놀이로 나눌 수 있다. 놀이를 노는 시기에 따라 구분하면 한해 내내 아무때나 즐기는 놀이가 절반쯤 되며 정월 대보름을 포함한 정월의 놀이가 40% 정도를 차지한다. 그것은 음력을 기준으로 생활해 온 우리 조상들에게 정월은 새해의 첫 달이고 더구나 대보름은 그 해에 들어와 처음으로 달이 가득 차는 날이어서 이를 매우 신성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에 농사가 잘 되기를 빌고 한해동안의 무병과 재수를 발원하며 마을의 태평을 비는 행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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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굿

풍물굿은 다리굿, 금고, 걸궁, 매구, 두레풍장 등으로 불리어진다. 이렇게 다양한 풍물굿의 이름과 더불어 풍물굿에 쓰이는 악기의 명칭과 악기를 두드리는 용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악기의 명칭도 다양해서 풍물, 굿물, 풍장, 군물 등으로 일컫고, 풍물을 두드리는 행위를 일컬어 ꡐ굿친다ꡑ, ꡐ금고친다ꡑ, ꡐ걸궁낸다ꡑ, ꡐ매구친다ꡑ, ꡐ풍장친다ꡑ 등으로 지칭한다. 이로써 미루어보건대, 풍물굿에 대한 인식이 제각기였음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풍물굿의 쓰임새를 짐작할 수 있다. 굿과 매구라는 용례를 보아 풍물굿이 어떠한 제의에 소용되었고, 걸궁은 풍물굿이 경비추렴을 위해서 쓰여진 말인 듯하고, 두레 풍장은 노동을 위해서 풍물굿이 쓰였음을 알게 한다. 풍물굿이 쓰여지는 사례는 풍물굿의 터전이 1년 사시사철의 생활습속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는 빌미가 된다. 바꾸어 말한다면 세시풍속과 풍물굿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세시풍속은 풍물굿의 쓰임새를 관장하는 원리일 뿐만 아니라, 풍물굿의 존재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세시풍속에 따른 풍물굿의 쓰임새에 대한 검증이 요청된다. 풍물굿은 섣달 그믐날 밤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주로 한 해의 묵은 것과 부정한 것을 몰아내고, 새롭고 깨끗한 것을 맞이하려는 매구와 지신밟이에 소용된다. 마을을 단위로 해서, 각 가정마다 풍물굿패가 지신밟이, 조왕굿 등을 해주고,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샘굿 등을 벌인다. 한 해의 안녕과 무사를 비는 데에 쓰인 풍물굿은 신앙 의례의 수단이었음을 쉽사리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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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음력 1월 15일을 ꡐ정월 대보름ꡑ이라 부르며, 또한 상원(上元)이라고도 부른다. 대보름이라는 이름은, 이 날 뜨는 보름달이 밝고 크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고, 상원이란 이름은 도교(道敎)에서 나름대로 붙인 이름이다. 사람들은 농사일도 한가하고 달도 밝고, 또한 겨울날씨도 이 때 즘 되면 많이 따뜻해지고 하니, 바쁜 봄철이 오기 전에, 이 날을 명절로 삼아 마음껏 하루를 즐긴다. 1. 약식 보름날에는 또한, 특별한 음식을 많이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는데, 그 중 특이한 것은 약식이다. 약식을 만드는 방법은, 먼저 찹쌀로 밥을 짓는데, 약간 되게 밥을 한다. 이 찹쌀밥에 씨를 뺀 대추와, 껍질을 깐 밤과, 잣을 넣고, 참기름과 꿀과 진간장을 버무려 푹 쪄서 만든다. 이렇게 만든 약식은 조상께 제사를 지낼 때 쓰거나, 손님을 대접할 때 쓰는데, 검붉은 빛이 나고 달고 쌉쌀한 맛이 있으며, 오래 두고 먹어도 잘 상하지 않는다. 2. 부스럼깨기 보름날 새벽에는, 그 전날 밤 머리맡에 준비해 두었던 ꡐ부럼ꡑ, 즉 호도·잣·은행 생밤 등 껍질이 단단한 과일과, 껍질 있는 땅콩·무우 등 단단한 땅속 식물을 서너 개 깨무는데, 이 때 ꡒ올해 일 년, 열 두 달, 아무 탈없이 무사히 지내고, 부스럼이나 뽀루지도 나지 말게 하소서.ꡓ 라고 기원한다. 이런 의식을 ꡐ부럼 깨물기ꡑ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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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상 차리기

다음은 우리나라 향교에서 권하는 차례 상 차리는 법입니다.(양위) 조율이시(棗栗梨柹)라 하여 좌측부터 대추, 밤, 배(사과), 감(곶감)의 순서로 차리며 그 이외의 과일들은 정해진 순서가 따로 없으나 나 과일, 넝쿨과일 순으로 차립니다. 과일 줄의 끝에는 과자(유과)류를 놓습니다. 2. 반찬을 놓는 줄 좌포우혜(左脯右醯)라 하여 좌측 끝에는 포(북어, 대구, 오징어포)를 쓰며 우측 끝에는 수정과를 씁니다. 그 중간에 나물반찬은 콩나물, 숙주나물, 무나물 순으로 올리고, 고사리, 도라지나물 등을 쓰기도 하며 청장(간장) 침채(동치미, 설명절)는 그 다음에 올립니다. 3. 탕을 놓는 줄 대개는 3탕으로 육탕(肉湯; 육류 탕), 소탕(素湯; 4. 적과 전을 놓는 줄 대개는 3적으로 육적(肉炙; 고기류 적), 어적(魚炙; 생선류 적), 소적(素炙; 두부, 채소류 적)의 순서로 올립니다. “적(炙)”은 생선이나 고기, 채소 따위를 대 꼬챙이에 꿰어서 양념하여 굽거나 번철에 지진 음식을 말합니다. “전(煎)”은 재료를 얄팍하게 썰어 밀가루를 묻힌 다음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지진 음식(부침개)을 말합니다. 5. 술잔과 떡국(설), 송편(추석)을 놓는 줄 앞에서 보아 떡국(송편)은 우측에 술잔은 좌측에 차립니다. 시접(수저를 놓는 빈 대접)은 단위제(한분을 모신)의 경우에 앞에서 보아 왼쪽에 올리며, 양위합제(두 분을 모신)의 경우에는 중간 부분에 올립니다. 6. 향로 향합 등 향상은 제사상 앞에 두고 축문, 향로, 향합을 올려놓으며 향로 뒤쪽에 모사 그릇을 놓습니다. 퇴주 그릇과 제주(술) 등은 제사상 오른쪽에 별도의 상에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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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

7월 7일을 칠석이라 한다. 이 날에는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하늘나라 목동인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가 결혼하였다. 그들은 결혼하고도 놀고 먹으며 게으름만 피우자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견우는 은하수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의 서쪽에 떨어져 살게 하였다. 그래서 이 두 부부는 서로 그라워하면서도 건널 수 없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애태우면서 지내야 했다. 이 견우와 직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안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석날에 이들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 주니 이것이 오작교이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는 칠석날이 되면 이 오작교를 건너 서로 그리던 임을 만나 1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진다. 이런 칠석의 전설로 인하여 칠석날 땅위에서 까마귀나 까치를 한 마리도 볼 수 없으며 간혹 사람들의 눈에 뜨이는 것은 병이 들었거나 늙어서 오작교를 놓으러 갈 수 없는 것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칠석날 다음에 까마귀와 까치들을 보면 그 머리털이 모두 벗겨져 있는데 그것은 오작교를 놓느라고 돌을 머리에 이고 다녔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이 칠석날에는 꼭 비가 내린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7월 6일에 오는 비를 세차우라 하고 7월 7일에 오는 비를 쇄루우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칠석날 저녁에 오는 비를 견우와 직녀가 만나서 기뻐하는 해후의 눈물이고 그 이튿날 내리는 비는 서로 헤어지는 작별의 눈물이라고 한다. 이 전설의 견우와 직녀는 독수리별자리[취성좌]의 알타이어(α)별과, 거문고자리[금성좌]의 베가(β)별을 가리키는 것으로 원래 은하수의 동쪽과 서쪽의 둑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별은 태양 황도상의 운행 때문에 가을 초저녁에는 서쪽하늘에 보이고, 겨울에는 태양과 함께 낮에 떠있고, 봄 초저녁에는 동쪽 하늘에 나타나며 칠석 때면 천장부근에서 보게 되므로 마치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견우성과 직녀성이 1년에 한 번씩 마주치게 보이는 것은 일찍이 중국 주대 사람들이 해마다 경험하는 천상의 사실이었는데, 차츰 탐기적인 요소가 붙어 한대에 와서 칠석의 전설이 성립된 것이다. 칠석은 원래 중국의 속절로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고려 공민왕은 몽고 왕후와 더불어 내정에서 견우, 직녀성에 제사하였고, 떠 이 날 백관들에게 녹을 주었으며, 조선조에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절일제의 과거를 실시하였다. 그래서 옛날 서당에서 이 칠석날이면 학동들에게 견우직녀를 제목으로 하여 시를 짓게 하였다. 그리고 칠석에는 옷과 책을 햇볕에 말리는 풍습이 있으니, 이는 여름의 장마철에 옷과 책에 습기가 차서 좀이 슬거나 썩기 쉬우므로 장마가 지난 이 때 햇볕에 말려 두면 겨울을 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칠석날 밤에는 부녀자들이 직녀성에게 바느질과 길쌈을 잘하는 재주를 빈다. 이것은 옛날 중국에서 널리 행하던 걸교의 풍습을 따르는 것으로 중국 송나라에서는 이것을 7월 6일에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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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명절

북한에서의 명절은 국경일․기념일․전통 민속명절 등을 총칭하고 있는데, 이 중 김일성․김정일 생일 등 국가적 명절에 가장 큰 비중을 두어 왔으며 전통 민속명절은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배격되어 왔다. 그러나 1972년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추석 때 인근에 조상묘소가 있는 경우에 성묘를 허용하였고, 1988년 이후부터는 추석을 휴식일로 정한데 이어, 1989년부터는 음력설과 단오절까지 휴무일로 인정, 민속고유명절을 부활시켰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치는 전래명절의 부활이라는 측면보다는 과도한 주민 노력동원 등에 따른 불평불만을 해소하는 한편, 해외교포들의 북한방문이 점증하는 추세에 대비하여 취한 일련의 조치로 보인다.현재 북한의 명절은 소위 10대 국가명절과 5대 민속명절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0대 국가명절은 김일성·김정일 생일, 정권창건일, 노동당창건일 등 우상화 및 체제선전에 맞추어 지정하고 있고, 5대 민속명절은 음력설을 비롯하여 양력설, 정월대보름, 단오, 추석 등으로 정해놓고 있다. 특히 2003년부터는 양력설을 대신하여 음력설을󰡐기본 설 명절󰡑로 정하고 정월대보름과 함께 크게 쇠고 있으며, 단오·추석도 예로부터 불려오던 수리날, 한가위로 바꿔 부르고 있다. 이는 남북한이󰡐같은 전통, 같은 문화󰡑를 가진 단일민족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속명절의 경우는 휴무일로 지정하고는 있으나 휴무일을 전후한 일요일을 대신 선정하여 보충노동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대휴󰡑라고 일컫고 있다. 북한의 명절은 전래명절 부활추세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사상 고취와 김일성·김정일 우상화를 위해 새로 설정한 소위󰡐사회주의 명절󰡑에 보다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 김일성·김정일 생일을󰡐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하여 충성의 편지전달 이어달리기, 예술 공연, 체육행사, 그리고 토론회 및 전시회 등 각종 행사를 진행하고 있고, 김일성 사망 후에도 생존시와 같이 김일성 생일기념 행사를 다양하게 개최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34개에 달하는 각종 기념일을 지정하고 있는데, 이들 기념일은 해당부문 종사자들끼리 모여 생산을 독려하는 기념행사를 갖은 뒤 하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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