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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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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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구약사에 대해...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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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Ⅰ 서론
 
‘역사’를 영어권에서는 History라 한다. 직역하면 “그분의 이야기”로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통해 나타낸 일들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History의 가장 근본적인 자료들을 제공한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어떤 일을 하셨으며, 또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에 대하여 성경만큼 좋은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없다.
‘구약’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록한 최조의 문서이다. 구약성경 이전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에 대하여 기록한 문서는 없다고 단언해도 과하지 않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일부터 기록하고 있으며, 그 창조사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첫 번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구약사’는 구약성경을 역사적 관점에서 정리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구약사에서는 다양한 사건들과 그 사건들 속에 내재된 다양한 주제들이 다루어진다. 그러나 여기서는 제한된 시간을 구실로 구약성경에 나타난 주제를 다룰 수는 없을 것 같다. 구약성경의 다양한 주제들은 “구약의 주제들”이란 과목으로 다루어져야할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다양한 주제들 가운데 핵심을 이루는 “언약”을 중심으로 신학적 부분을 다룰 것이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가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중심으로 나타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구약사는 마치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Ⅱ 태고사
 
보통 구약성경에서 ‘아브라함’이 등장하기 전까지를 “이스라엘 전사”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닌 “구약사”로 접근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역사를 “태고사”로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 야훼의 천지창조 (창세기 1-2장)
 
구약성경은 “태초에 야훼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는 선언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인류의 역사는 야훼의 창조 행위로 인하여 가능하였다는 것이며, 창조 이후로도 야훼께서 인류를 주관하실 것이라는 무언의 선언이기도 하다.
천지를 존재하게 하신 야훼의 창조행위를 분석해 보면, 결국 그 모든 행위가 어떤 목적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첫째 날 낮과 밤을 창조하신 야훼께서는 넷째 날 해와 달을 창조하심으로써 첫째 날에 창조된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 둘째 날 하늘과 바다를 창조하신 야훼께서는 다섯째 날에 새와 물고기를 창조하심으로써 각각 하늘과 바다를 주관하게 하셨다. 셋째 날 땅과 땅 위에 서식하는 채소와 과목을 창조하신 야훼께서는 여섯째 날에 사람과 짐승을 창조하심으로써 땅을 주관하게 하셨다. 여기서 창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야훼께서는 이 모든 만물의 총책임자로써 인간을 세우기 위해 인간을 아주 특별하게 창조하셨다. 야훼의 형상과 모양을 본떠 창조하셨다(창 1:26).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야훼께서는 인간에게 자신의 생기를 주심으로써(창 2:7) 인간이 만물에 대하여 야훼의 대리인이 되게 하셨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신 야훼의 첫 번째 선물이다.
 
2. 인간의 타락과 홍수 사건 (창세기 3-9장)
 
세상의 그 누구도 받지 못했던 은혜를 유일하게 받은 인간(아담)은 야훼의 금령을 어김으로써 “야훼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창 1:31) 모습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창조의 목적을 꺾지 않으셨고, 그와 같은 야훼의 의지를 “언약”이란 형식으로 우주에 선포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아담’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야훼께서는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장차 태어날 여자의 후손을 통해 인류를 타락하게 했던 죄의 세력을 박멸시킬 것임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인류의 타락은 급속히 확산되어 급기야 보시기에 좋았던 인류를 결국 야훼로 하여금 그 인류를 멸망시킬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게 했다(창 6:11-13). 인류는 홍수로 일차 멸망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미 스스로 언약을 체결하신 야훼께서는 ‘노아’를 “남은 자”(remnant)로 삼아 인류의 소망이 되게 하신다.
길가메쉬 서사시(Gilgamesh Epic)에는 그 때 홍수로 살아남은 자의 이름이 나온다. ‘우도나삐시뎀’이다. 신(god)은 ‘우도나삐시뎀’에게 배를 만들라고 명령한다. 비가 내린지 수십일이 지난 후 ‘우도나삐시뎀’은 새를 보내고 토지가 나타난다. 그는 배가 고파 신에게 고기 먹기를 원했고, 신은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서사시는 단순히 민담형식으로 홍수 이야기를 기록한다. 성경의 기록과 매우 유사하다. 홍수 사건은 전 인류가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자에서 큰 배를 뜻하는 ‘선’(船)자는 배를 뜻하는 ‘주’(舟)자와 여덟을 뜻하는 ‘팔’(八)자와 사람의 입을 뜻하는 ‘구’(口)자로 이루어졌다. 이는 홍수시대에 배를 통해 살아남은 자가 8명이라는 성경의 이야기가 극동지역에도 알려졌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길가메쉬 서사시나 중국의 한자가 말하는 홍수의 이야기와 성경의 홍수 이야기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성경만이 신의 주권과 속성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은 죄로 가득한 세상을 야훼께서 홍수로 멸하셨다는 것과, 배의 문을 야훼께서 직접 닫으셨다는 것과, ‘노아’를 통해 인류의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셨다는 점들은 신의 주권 아래 홍수 사건이 발생한 것임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다른 홍수이야기와 구별된다. 특히 노아와 맺은 새 언약은 야훼의 속성을 잘 대면하고 있다(창 9:11-17 참조).
 
3. 바벨탑 사건 (창 11장)
 
새로운 역사를 책임 진 노아는 불행하게도 술로 인하여 죄의 씨를 뿌리게 된다. 포도주에 취한 노아는 벌거벗었고, 그의 아들 ‘함’(가나안의 아비)은 아비의 수치를 공개함으로써 저주를 받는다(창 9:20-25).
인류는 급속히 발전을 거듭했고, 메소포타미아의 시날평지로 이주한 사람들은 벽돌 제조 기술의 발전을 이루어 높은 탑을 쌓았다. 이는 종교의식을 위해 세웠지만 결국 인간의 위용을 자랑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으로써 인간이 야훼와 견줄만한 존재임을 과시하는 계기가 된다. 야훼는 이런 인간의 의지를 좌절시키기 위해 “언어장애”를 일으켰다. 야훼와 견주고자 했던 공동체를 해체한 것이다. 이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야훼를 잊고 방황하는 상태에서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성경은 노아의 술 취함과 그로 인한 함의 범죄가 야훼와 견주려하는 악한 죄악의 출발점이었음을 제시한다. 야훼께서는 아담을 대신하여 새로운 인류를 이 세상에 남기셨으나, 아담을 대신하는 노아 역시 결국 아담처럼 범죄에 노출되어 그의 후예들로하여금 바벨탑사건을 가능하게 했다. 성경은 노아의 의로움에 대하여 “…(노아는) … 당세에 완전한 자…”(창 6:9)라고 평가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노아는 야훼 앞에서 당세에 가장 의로운 자였으나, 당세에 의로운자라 해서 야훼 앞에서 의로울 수는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 인류 문명의 기원을 메소보타미아 무명으로 보며, 이는 B.C 5,000년경으로 추정한다. 이 당시에 가나안에는 고대 도시 ‘여리고’가 존재했다. 그리고 B.C 4,000년경부터 이집트문명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등장하는 시기가 B.C 2,000년경으로 본다. 그러므로 베벨탑 사건은 메소보타문명의 시대에 발생한 사건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제 2 강 족장사
 
 
Ⅰ 아브라함
 
성경은 바벨탑 사건 이후 ‘아브라함’의 등장 배경을 말함에 있어 그가 “셈의 후예”라는 사실부터 거론한다(창 11:10). ‘셈’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을 낳았고(창 10:22), 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씨족과 부족을 이루고 살았다. 이들 중 일부가 메소포타미아의 고도(古都) ‘우르’(Ur)에서 세력을 이루고 살았다.
 
1. 아브라함이 살던 땅
 
우르(Ur)는 B.C 2,500-2,400년경에 수메르인에 의해 제 1왕조가 세워졌으나, 같은 수메르계 도시국가 ‘라가슈’에 의해 무너졌다가 B.C 2,050-1950년경 제 3왕조를 재건하여 메소포타미아의 지배자가 된다. 이 왕조를 통치한 왕들 중 5명의 연속 통치자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우르 남무’(Ur-nammu, 18년 통치), ‘술기’(Shulgi, 48년 통치), ‘아마르신’(Amar-sin), ‘수신’(Shu-sin, 9년 통치), ‘이비신’(Ibbi-sin, 25년 통치) 등이다. 이들 중 ‘우르 남무’(Ur-nammu)의 법전은 훌륭한 법전으로서 “함무라비 법전”보다 오래된 것이다. 우르 남무’(Ur-nammu)의 이름은 신전(Ziggurat)에도 기록되어있는데, 이는 ‘우르 남무’가 신전건축을 총감독했음을 보여준다. 신전은 성물을 보관하는 창고와 사제들의 생활 터전도 갖추고 있었다. 이 신전에서 섬겨졌던 신들 중 ‘달신’(月)인 ‘닌갈’(Ningal)은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진 신이다.
아브라함 시대의 ‘우르’는 법전, 건축, 문화, 무역, 교육 등이 진보된 상태였다. 특히 학교가 존재했을 정도였으니 아브라함이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을 것은 당연하였을 것이고, 많은 문화를 섭력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 모세가 오경을 기록하기 전 히브리인들 사이에서는 어떤 자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자료는 아브라함에 의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2. 야훼의 부름을 받고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성경에 비춰진 아브라함은 모험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앞일을 생각하는 매우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므로 야훼의 부름에 응한 것은 그의 놀라운 신앙을 보여준 것이다.
창세기 11:31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가족을 이끌고 갈데아 우르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우르를 떠나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 ‘데라’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사도행전 7:2의 ‘스데반’은 “야훼께서는 메소포타미아의 아브라함에게 영광을 보였다”고 말할 뿐, 데라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 아마도 아브라함이 데라에게 우르를 떠날 것을 설득했을 것이고, 거사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가장인 데라가 주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 11:31에서 데라의 일가가 가나안으로 가려했다고 하지만 데라는 죽는 날까지 가나안으로 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데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이 재차 야훼의 부름을 받고서야 가나안으로 출발했다는 점은 야훼의 신탁을 받은 것은 데라가 아닌 아브라함이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라 하겠다.
한편, 창세기 11:31은 데라가 가나안으로 가려했다고 말하는 반면,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히 11:8)고 한다. 이는 가나안을 제시받기는 하였으나, 구체적인 장소에 대하여는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브라함 일행이 우르로부터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프라테스를 따라 초승달지역을 통과해야만 했다. 우르로부터 가나안에 이르는 직선 길은 광대한 사막이기 때문이다. 가나안이 교통의 요충지로써 강대국들의 계속되는 침략을 받고, 또한 여러 민족의 문화를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이었다. 초승달지역으로 여행하던 아브라함 일행은 하란에 이르러 멈춘 이유는 아마 그 곳에는 셈족 계열의 아람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또한 그 곳에서는 우르에서처럼 ‘달신’(月) 숭배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아마 데라는 이곳에서 아브라함을 설득했을 것이고, 아브라함 역시 오랜 여행으로 신앙이 약해졌음으로 동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측의 가능성은 여호수아가 특별히 데라를 거론하면서 “그는 강 저편에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말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수 24:22).
 
3.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 야훼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명하신다(창 12;1). 야훼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은 ‘함’의 후손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창 10:15-18). 가나안의 초기청동기시대인 B.C 30세기는 아브라함이 도착하였을 때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가나안은 B.C 2,200년경 반유목민인 ‘아모리’인들에 의해 거의 점령되었고, 아모리인들의 정착으로 인해 다시 도시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시점의 애굽은 놀라운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다. B.C 2,600년부터 2,200년까지의 고왕국 시대는 제 3왕조에서 제 6왕조가 다스렸는데, 이 때 대형 피라미드가 만들어졌다. 그 후 2,200년부터 2,000 사이에 소위 중간 시기라 불리우는 어려운 때를 당하였다. 왕권을 노리는 경쟁자가 나타났고, 지방의 관리들은 영주가 되었으며, 많은 도시들은 권력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행동하였다. 이 때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가뭄을 피해 애굽으로 이주했으나, 여기서 큰 망신을 당하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간다(창 12:10-20).
애굽에서 돌아온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분리한다(창 13:1-8). 롯은 요단강가의 ‘소돔’과 ‘고모라’가 마치 애굽처럼 풍요로운 땅임을 보고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나, 아브라함은 헤브론을 근거지로 삼는다(창 13:18). 연장자인 삼촌보다 먼저 선택권을 행사한 롯은 이후 아브라함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엘람’의 왕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4개국 동맹군이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인근 도시국가들을 습격하였을 때에 롯과 그 가족은 포로가 되고 말았다. 아브라함은 가병 318명과 인근 부족들의 도움을 받아 ‘단’까지 추격한 끝에 조카 롯을 구했다(창 13:1-14:24). 그 후로도 롯은 소돔을 떠나지 않았다. 소돔의 죄악이 관영함을 보고도 롯은 그 곳에서 그 곳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야훼께서는 그런 소돔을 멸하시기 위해 사자를 보내셨고, 사자들은 이 정보를 아브라함에게 제공한다. 아브라함은 즉시 중보에 들어갔고, 롯과 그의 가족 일부가 구원을 받는다. 아브라함과 롯과의 관계가 단순한 가족관계에서 중보자와 그 중보에 의해 구원을 받은 관계로 변한 것이다. 성경은 이 관계의 변화를 통해 한 의로운 사람에 의해 죄인들이 구원받게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4. 언약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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