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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이 유행하기 된 원인

현대사회에서 미용성형 수술이 이토록 널리 유행할 수 있는 요인으로 고도화 되고 있는 소비사회의 구조를 지목한다. 소비주의, 상징 소비와 같은 소비사회 구조의 특징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똑한 코’, ‘시원한 눈매’, ‘갸름한 턱선’ 등의 외모가 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아름다움의 상징이며, 다른 사람들도 다 하기 때문에, 능력만 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으로 성형수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과거 유교 사상이 팽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몸에 칼을 대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외모)를 변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후 성형수술에 대한 찬반 여부, 부작용에 대한 심각성 등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던 시기를 거쳐 오늘날의 성형수술은 자기 배려로서의 적극적인 선택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국내 여성 월간지 127부를 대상으로 1970년대 이후 미용성형 광고량의 변화를 살펴보면, 1995년 이전까지 한 호당 평균 1~2개에 불과했던 광고는 2000년에 약 27개가 될 정도로 급팽창하고 있다. 대중들은 더 이상 성형수술을 금기 시 해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닌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소비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는데 이는 달리 말해 자신의 신체를 소비행위가 가능한 하나의 재화로 여겨 스스로에게 가하는 소비 행위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체는 사유재산과 똑같은 지위에서 하나의 자본으로 취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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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의 저도화 추세

1924년 진로가 처음 출시한 소주는 증류식으로 알코올 도수가 35도에 이르렀지만, 1965년 희석식으로 바뀌면서 소주 도수는 30도로 낮아졌다. 이후 소주 도수는 지속적으로 낮아졌으며 최근에는 20도 소주가 등장하여 순한 소주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소주업체들이 저도 소주를 출시한 배경은 최근 웰빙트랜드의 영향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음주문화가 변화하고 있으며,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여성 고객들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또한, 2005년 하이트맥주에 인수된 진로의 시장지배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두산을 비롯한 지방 소주업체들이 신제품 출시를 통해 시장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노력한 것에 기인한다. 2006년 2월 두산이 20도 소주 신제품 ‘처음처럼’을 출시하면서 최근 소주시장의 저도화 추세를 주도했으며, 이어 참이슬이 20.1도로 기존 제품의 도수를 낮춰 리뉴얼하였다.지방 소주업체들도 기존 제품의 리뉴얼이나 신제품 출시를 통해 순한 소주시장에 가세함으로써 지역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이고자 노력중이다. 대구/경북지역 소주업체인 금복주와 부산지역의 대선주조는 각각 20도짜리 리뉴얼 제품 ‘참소주’와 ‘시원소주’를 출시하였다. 전남지역의 보해양조도 20도의 신제품 ‘잎새주’를 출시했으며, 대전/충남지역의 선양은 20.5도 ‘린’을 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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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소주의 역사

소주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고려 충렬왕 때로 몽고군을 통해서 도입 되었고, 그뒤 이를 즐기는 무리가 생겨서 소주도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특히 몽고군의 주둔지였던 안동과 개성, 제주도는 제조법이 발달하였으며, 최근까지도 그 전통이 유지되어 유명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유행되어 이에 관한 기록이 많이 보이고있다. `단종실록` 에는 문종이 죽은 뒤 단종이 상재노릇을 하느라고 허약해져서 대신들이 소주를 마시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고, `중종실록`에는 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많아져서 쌀의 소비가 늘고 있으며, 소주로 인한 피해가 크다 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1490년 (성종 21년)에 시간 조효동은 `세종 때는 사대부집에서 소주를 사용하는 일이 매우 드문 일이였다. 요즈음은 보통의 연회 때도 소주를 사용하고 있어 비용 이 막대하게 드니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하였다. `지붕유설`에서는 근세에 와서 사대부들이 호사스러워져 소주를 많이 마셔 취해야만 그만두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갑자기 죽는 사람도 많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약용으로 마시거나 왕이나 사대부들이 마시던 술이로서 점차 일반서민에게도 보급되어 각 가정에서도 많이 빚어먹게 되었다. 1916년에 들어서는 일제가 주세법을 공포, 시행함에 따라 일본인들이 많은 자본으로 소주 제조장을 기업화하기 시작하여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소주 산업은 정부의 식량 정책등 환경적 여건에 의하여 사용원료 및 제조방법등에 여러차례의 변화가 있었다. 특히 1965년도의 양곡관리법 시행으로 소주의 원료 대체가 불가피하게 됨에 따라 전국의 수많은 증류식 소주업체들이 희석식 소주업체로 전환하여 본격적인 희석식 소주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1970년에는 희석식 소주 회사가 254개업체였는데 저질 주류 생산과 치열한 판매 경쟁으로 인한 유통질서의 문란으로 주류회사의 통폐합으로 국가 정책이 바뀌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1977년에는 각 지방별 제조장 기준으로 하여 각도에 1개씩 총 10개의 희석식 소주업체가 유지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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