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에 관한 용어 및 어휘
미용성형: 모습을 아름답게 수정하기 위한 하나의 교정술이다. 임상의학의 미용을 목적으로 하여 행하는 특수효과. 성형외과: 선천성 기형 및 후천적으로 받은 변형에 대해 조직의 이식. 이동 등 외과적 수기를 써서 되도록 정상적인 모양으로 고치거나 또는 만들어 내는 외과. 성형중독증: 수술 후 재수술을 검토하거나 인터넷이나 잡지 등을 통해 1주일에 3시간이상 성형수술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 성형수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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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이 유행하기 된 원인
현대사회에서 미용성형 수술이 이토록 널리 유행할 수 있는 요인으로 고도화 되고 있는 소비사회의 구조를 지목한다. 소비주의, 상징 소비와 같은 소비사회 구조의 특징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똑한 코’, ‘시원한 눈매’, ‘갸름한 턱선’ 등의 외모가 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아름다움의 상징이며, 다른 사람들도 다 하기 때문에, 능력만 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으로 성형수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과거 유교 사상이 팽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몸에 칼을 대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외모)를 변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후 성형수술에 대한 찬반 여부, 부작용에 대한 심각성 등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던 시기를 거쳐 오늘날의 성형수술은 자기 배려로서의 적극적인 선택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국내 여성 월간지 127부를 대상으로 1970년대 이후 미용성형 광고량의 변화를 살펴보면, 1995년 이전까지 한 호당 평균 1~2개에 불과했던 광고는 2000년에 약 27개가 될 정도로 급팽창하고 있다. 대중들은 더 이상 성형수술을 금기 시 해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닌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소비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는데 이는 달리 말해 자신의 신체를 소비행위가 가능한 하나의 재화로 여겨 스스로에게 가하는 소비 행위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체는 사유재산과 똑같은 지위에서 하나의 자본으로 취급되고 있다.
청소년기란 무엇인가?
청소년기는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의 짧은 기간이다. 청소년기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따온 말로 “완숙을 향해 성장하는것”을 의미한다. 이시기에는 생식기능과 일차적 성기관이 성숙되고 2차적 성적 특성이 나타나는 급격한 생리적 성장기인 ‘사춘기’로부터 시작된다. 사춘기는 약 2년동안 지속되고 개인이 성적으로 성숙하고 생식할 수 있는 시점에서 끝난다. 청소년기가 언제 끝나는지는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어떤사회에서는 각 개인이 성적발달이 완성되고 임신하거나 아기를 낳을수 있는 능력이 있을때인 사춘기 때 청소년기가 끝난다. 자립하게 되거나, 직업을 선택하거나, 결혼하거나, 가정을 가지게 되면 사회적인 성년기에 도달하게 된다. 법적인 성인기는 투표권이 주어질때, 부모의 허락없이 결혼할수 있을때(여자는 18세, 남자는 21세), 군대에 입대할 때(17세), 또는 법적인 계약 단계에서 책임질 수 있을 때(21세)이다.
포경수술의 정의
포경(phimosis) : 음경의 귀두가 여분의 포피로 덮여 있는 상태.어린아이의 경우 포피내판과 귀두가 유착되어 포경을 나타내다가(생리적 포경) 성인이 되면 귀두가 자연스럽게 노출이 된다.그런데 포피구가 좁거나 유착이 남아서 귀두가 노출되지 않는 것을 포경(진성포경)이라고 한다.
요도하열 교정 시기
아이들이 성에 대한 인식을 하는 시기, 즉 생후 18개월 이전에 수술적 교정을 마쳐야 한다. 따라서 돌 전후, 빠르면 생후 6개월부터 교정을 해야 한다. 과거에 요즘처럼 기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수술을 늦추는 경향이 있었으나 요즘에는 나이가 문제되지는 않는다.
비아그라
비아그라는 정력을 의미하는 비거(vigor)와 거대한 폭포인 나이아가라(niagara)를 합성한 말로서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흘러넘치는 정력”이란 뜻을 담고 있는 실데나필이라는 약품의 상품명이다. 비아그라는 원래 심장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기력을 향상시키는 약물을 발견함으로써 탄생되었다. 그러나 명성과는 달리, 비아그라는 발기부전을 치료하는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성기능의 문제는 어떤 하나의 약물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성기능의 문제는 신체적인원인과 심리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성기능의 문제를 온전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성기능 장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성부전의 생물학적 요인
심리적으로 치료해야한다는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성부전을 일으키는 모든 신체적 상태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표면상 건강하게 보일지라도 숨겨진 초기 당뇨병이나 다발성경화증과 같은 것이 원인이 되고 있을지도 모르고 남성호르몬의 낮은 수치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알코올을 남용하거나 마약을 사용하고 또는 고혈압 때문에 자율신경계 차단제를 복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 요인은 모두 발기반응을 손상시키게 된다. 성적충동의 전반적 저하는 순수하게 심인성인 경우도 있으나 기질적인 원인에 의할 때도 있다. 성욕에 대한 흥미의 상실은 간염과 같은 전신적인 질환으로 쇠약해져 있을 때 많이 발생한다.
성기능 부전이란?
성기능이 완전하지 못하여 정상적인 성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려울 만큼 신체적으로 이상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이러한 증상은 남녀 모두에게 나타나 약물복용, 고혈압, 심장병, 알코올, 흡연, 당뇨병 등과 같은 생리적인 이유에 의해서, 또 비뇨생식기 계통의 유전적인 기형 등에 의하여 성기능에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복잡한 사회생활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성에 대한 강박 관념 등에 의한 심리적인 이유로 인하여 성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수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저도 소주 출시로 소주시장 성장 기대
소주 출하량의 추이를 살펴보면, 2000년 소주의 주세율이 35%에서 75%로 인상되면서 출하량이 일시 감소하였으나, 2001년 22도 소주가 본격 출시되면서 소주의 음주층 확산으로 출하량이 전년대비 무려 15% 성장하였다. 소주시장의 특성상 불황기에도 판매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2005년에는 경기둔화 지속으로 구매력이 감소한 결과 소주의 출하량이 117만kl로 정체상태를 보였다. 2006년 1분기에는 소주도수가 20도 이하로 낮아지면서 고객층이 확대되고, 신제품 출시로 마케팅이 강화되어 소주 출하량이 전년동기대비 4.2% 증가하였다. 특히 2006년 2월이후 출하량 증가율이 전년동기비 7%를 상회하는 등 소주시장이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어 소주시장의 성장이 기대된다.
소주의 저도화 추세
1924년 진로가 처음 출시한 소주는 증류식으로 알코올 도수가 35도에 이르렀지만, 1965년 희석식으로 바뀌면서 소주 도수는 30도로 낮아졌다. 이후 소주 도수는 지속적으로 낮아졌으며 최근에는 20도 소주가 등장하여 순한 소주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소주업체들이 저도 소주를 출시한 배경은 최근 웰빙트랜드의 영향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음주문화가 변화하고 있으며,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여성 고객들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또한, 2005년 하이트맥주에 인수된 진로의 시장지배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두산을 비롯한 지방 소주업체들이 신제품 출시를 통해 시장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노력한 것에 기인한다. 2006년 2월 두산이 20도 소주 신제품 ‘처음처럼’을 출시하면서 최근 소주시장의 저도화 추세를 주도했으며, 이어 참이슬이 20.1도로 기존 제품의 도수를 낮춰 리뉴얼하였다.지방 소주업체들도 기존 제품의 리뉴얼이나 신제품 출시를 통해 순한 소주시장에 가세함으로써 지역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이고자 노력중이다. 대구/경북지역 소주업체인 금복주와 부산지역의 대선주조는 각각 20도짜리 리뉴얼 제품 ‘참소주’와 ‘시원소주’를 출시하였다. 전남지역의 보해양조도 20도의 신제품 ‘잎새주’를 출시했으며, 대전/충남지역의 선양은 20.5도 ‘린’을 출시하였다.
우리나라 소주의 역사
소주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고려 충렬왕 때로 몽고군을 통해서 도입 되었고, 그뒤 이를 즐기는 무리가 생겨서 소주도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특히 몽고군의 주둔지였던 안동과 개성, 제주도는 제조법이 발달하였으며, 최근까지도 그 전통이 유지되어 유명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유행되어 이에 관한 기록이 많이 보이고있다. `단종실록` 에는 문종이 죽은 뒤 단종이 상재노릇을 하느라고 허약해져서 대신들이 소주를 마시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고, `중종실록`에는 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많아져서 쌀의 소비가 늘고 있으며, 소주로 인한 피해가 크다 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1490년 (성종 21년)에 시간 조효동은 `세종 때는 사대부집에서 소주를 사용하는 일이 매우 드문 일이였다. 요즈음은 보통의 연회 때도 소주를 사용하고 있어 비용 이 막대하게 드니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하였다. `지붕유설`에서는 근세에 와서 사대부들이 호사스러워져 소주를 많이 마셔 취해야만 그만두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갑자기 죽는 사람도 많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약용으로 마시거나 왕이나 사대부들이 마시던 술이로서 점차 일반서민에게도 보급되어 각 가정에서도 많이 빚어먹게 되었다. 1916년에 들어서는 일제가 주세법을 공포, 시행함에 따라 일본인들이 많은 자본으로 소주 제조장을 기업화하기 시작하여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소주 산업은 정부의 식량 정책등 환경적 여건에 의하여 사용원료 및 제조방법등에 여러차례의 변화가 있었다. 특히 1965년도의 양곡관리법 시행으로 소주의 원료 대체가 불가피하게 됨에 따라 전국의 수많은 증류식 소주업체들이 희석식 소주업체로 전환하여 본격적인 희석식 소주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1970년에는 희석식 소주 회사가 254개업체였는데 저질 주류 생산과 치열한 판매 경쟁으로 인한 유통질서의 문란으로 주류회사의 통폐합으로 국가 정책이 바뀌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1977년에는 각 지방별 제조장 기준으로 하여 각도에 1개씩 총 10개의 희석식 소주업체가 유지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소주의 유래
과실이나 곡물을 원료로 하여 술을 빚은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이것을 다시 증류하여 만든 소주는 인간의 지혜가 상당히 진보된 후대의 산물이다. 술의 증류법은 중세기 페르시아에서 발달되었다고 하며, 아라비아에서 원나라, 만주를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소주를 아라비아어로 아락이라 하고 만주어로는 `알키`라고 하며, 우리나라 평안북도지방에서는 아랑주, 개성지방에서는 아라주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소주가 한국에 보편화 된 배경
소주는 고려시대에 원나라로부터 전해 졌다. ‘단종실록‘에는 문종이 죽은 뒤 단종이 상제 노릇을 하느라고 허약해져서 대신들이 소주를 마시게 하여 기분을 차리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처음에는 약용으로 마시거나 왕이나 사대부들이 마셨던 술이었는데 점차 서민에게도 보급되어 각 가정에서도 많이 빚어 먹게 되었다.그 뒤 1919년에 평양에 알콜식 기계 소주공장이 세워지고 이어 인천, 부산에도 건설되어 재래식의 누룩을 이용한 소주는 흑국소주로 바뀌고, 1952년부터는 값 싼 당밀을 수입하여 만들게 되었다. 1965년 정부의 식량정책의 일환으로 곡류의 사용이 금지됨에 따라 우리의 고유한 풍미와 정성어린 증류식 순곡주는 자취를 감추고 고구마, 당밀, 타피오카 등을 원료로 하여 만든 주정을 희석한 희석식 소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